
어느덧 지상에는 뜨거운 태양이 등줄기를 훅훅 볶으며 춤추는 아지랑이들을 피워내는 여름이 찾아왔다.
프리스크가 괴물들과 함께 지상으로 올라온 지 어느덧 꽤 오랜 시간이 지났고 괴물들 역시 어색하지만 지상에 적응해 살아가고 있었으며 프리스크 역 시 그들의 대사가 되기 위한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아무 문제도 없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 한 일이었고 그럴 때 마다 괴물들의 대사인 프리스크는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나섰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샌즈는 오늘도 어김없이 집안 소파위에 누워서 하염없이 뒹굴 거리고만 있었다.
누군가 본다면 또 다시 '지상에 올라온 뒤에도 그렇게 게으르면 어쩌자는 거야! 형은 정말 게을러!' 라고 하겠지만 샌즈는 이번에는 할 말이 있었다.
누군가 저렇게 말해 온다면 '이봐, 너무 더워서 뼈마디가 굳어버렸다고' 라고 말해줄 참이었다.
사실 뼈다귀 괴물이다 보니 더위는 전혀 타지 않지만 말이다. 하지만 샌즈에게 그런 말을 해줄만한 사람은 괴물 경찰관 일과 더불어 요리 학원을 다니느라 뼈 빠지게 바빠서 그런 말을 해 줄 틈도 없을 것이다.
이제 거의 소파와 한 몸이 된 듯 한 샌즈의 귓가로 요란스럽게 전화벨이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일어나기도 귀찮고 어차피 집 안이라 그 누구도 볼일이 없으니 샌즈는 일어나는 선택 대신 허공에 손을 휘적거렸고 신기하게도 그의 손에 잠시 뒤에 탁자위에 놓여 있던 핸드폰이 날아와 잡혔다. 아마 언다인이 봤다면 쓸데없는데 힘을 뺀다고 뭐라 했을 테지만 귀찮은걸 어쩌란 말인가.
지긋이 감고 있던 눈을 살짝 떠서 액정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괴물들의 여왕이자 현재는 다정한 학교 선생인 토리엘의 이름이 떠 있었기에 샌즈는 피식 웃으며 이번에는 이 훌륭한 개그센스를 가진 여인이 무슨 일로 전화를 한 것인가 생각해 보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샌즈? 집에 있나요?"
"헤, 그럼 제가 어디 있겠어요. 토리엘. 무슨 일로 전화를 하셨죠? 이번에도 피자로 원반던지기를 하다가 그만 피자를 잃어버리셨나요?"
샌즈는 보지 않아도 그녀가 매우 창피해 하며 얼굴을 붉히고 있을 거라 생각했고 잠시 후면 토리엘이 매우 당황해 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돌아온 반응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 이야기는 그만하기로 했잖아요. 샌즈, 그나저나 오늘 잠시 시간이 있나요?"
토리엘의 말에 샌즈는 뭔가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평소 같았으면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으며 반박했을 토리엘인데 바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고 거기다 시간이 있냐고 물어보다니 말이다.
토리엘을 만나는 건 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것 같아 언제나 반갑지만 왠지 모르게 오늘은 그다지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았기에 샌즈는 오늘은 아무래도 안될 것 같다고 말 하려는 순간 수화기 너머에서는 토리엘의 다른 말이 흘러나왔다.
"프리스크가 요새 힘들어 하는 것 같아서요, 그 아이가 당신을 유난히 잘 따랐잖아요. 그래서 잠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나 해서요."
꼬맹이의 일이라니, 귀찮다고 미룰 수 없는 일이기에 샌즈는 가볍게 웃으며 알겠다고 토리엘에게 말했다. 언제쯤 나가면 되냐고 했더니 토리엘은 잠시 말이 없어졌는데 아마 시계를 보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녀는 '오늘밤 8시쯤이면 될 거 같아요.' 라고 말했고 샌즈 역시 흔쾌히 알겠다고 말했다.
전화가 끊어 진 직후 샌즈는 약속 시간 까지는 아직 멀었기에 잠시 두 눈을 감고선 꼬맹이에 대해서 가만히 떠올려 보았다.
괴물들을 지하에서 풀어준, 어느 날 찾아온 작은 구원자 이자 놀라운 아이. 어른이나 그 누구더라도 견디기 힘들었을 일들을 버티며 선한 마음으로 모두를 구한 아이.
지상에 함께 올라온 뒤로도 곧잘 함께 놀았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공부니 대사일이니 바빠서 통 보지 못한 작은 아이.
샌즈는 피식 웃으며 못 본지 오래 된 꼬맹이는 과연 얼마나 키가 자랐을까 상상해 보았다. 예전에 함께 놀 때처럼 늘 해맑고 쾌활해서 아직도 반창고를 붙이고 다닐까? 머리는 길렀을까 잘랐을까? 여전히 그 줄무늬 옷을 입고 있을까? 갑작스럽게 샌즈는 꼬맹이 일이기 때문에 가는 게 아니라 정말로 오랜만에 프리스크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가슴속에 찰랑거리며 차올랐고 소파에서 그 무거운 몸을 움직이는 샌즈의 뒤로 샌즈 모양이 그대로 눌려있는 소파만이 덩그런 히 남게 되었다.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 좋게 준비할게 좀 있을 거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