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야. 프리스크는 진작 알고 있었다. 이곳에 처음으로 떨어져서 본 꽃을 볼 때부터 짐작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대면할 자신이 없었다. 그 누군가가 죽음을 바로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프리스크는 얼굴을 가만히 쓸어내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무도 없는 곳이 필요했다. 밤하늘 위에 별빛이 찬란한 곳인 메아리 꽃 동굴에 다다랐을 때쯤에 말하는 꽃을 내려다보았다. 그들이 진실을 말할 수도 있다고 해. 대부분 메아리 꽃들은 마지막에 들었던 말을 반복하는 게 전부이지만. 프리스크는 샌즈가 해주었던 메아리 꽃의 얘기를 기억해두고 있었다. 진정 꽃들이 진실을 말해준다는 건 믿지 않았으나 이번만큼은 간절하게 믿고 싶었다.
희생을 가담할 수 있을지의 걱정이 컸던 프리스크는 생각하고 있는 말들을 입 밖으로 쉽게 내뱉기가 두려웠다. 프리스크는 한참 동안 메아리 꽃을 쳐다보고 있었다가 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해골. 꽃과 자신밖에 없는 이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분명 꽃이었다. 하지만, 꽃에게 얘기한 것은 없었는데도 먼저 말을 한 꽃의 목소리에 프리스크는 당황스러웠다. 그게 무엇이냐며 묻기도 전에 꽃이 다시 한 번 대답했다. 뒤에. 프리스크는 꽃의 말을 듣고는 누군가가 있다는 말에 고개를 돌리자 강 너머로 샌즈가 서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프리스크는 자신을 쫓아왔고 들켰다는 생각을 했고 걸음을 버릇처럼 주춤 거리다가 발 뒤로 꽃이 있었다는 것에 뒤늦게 발을 옮기려다 그만 서로 발이 얽혀 뒤로 몸이 기울였다.
도망가도 결국엔 제자리라는 건 알고 있어. 그에게서 답을 얻고 싶었다. 프리스크는 샌즈를 부르기도 전에 차갑기만 한 심연 속에 빠져버렸다. 마치 밤하늘에 빠진 것 처럼 천장은 다른 것들의 별빛보다 더 아름다웠고 그 곳에서 찬란하게 빛이 바래지고 있었다. 이대로, 죽는 것인지의 걱정도 들었으나 어쩌면 이런 것도 나쁘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리스크는 점점 빠져드는 물속에서 손을 내밀었다. 닿지 않는 빛을 가지기라도 하듯이 손을 쥐었다. 정신은 점점 아득해졌고 어느 것이 꿈인지, 현실인지도 망각해버린 듯이 한참을 심연 밑에 몸만 뜨고 있었다. 그렇게 계속 그 밑에 잠식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곳에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누구였지, 저 목소리는. 한참 동안 물속에서 유영하듯이 몸이 가볍게 뜨는 자신을 보게 되었다.
“…Kid.”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정신이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프리스크는 샌즈의 목소리에 겨우 쿨럭이며 물을 내뱉었으나 잠시 호흡을 가진 것 처럼 시야는 흐릿해졌다. 눈을 뜬 곳은 처음으로 보았던 문이 보였고, 그 다음으로는 샌즈였다. 걱정했을까. 한참동안 입을 열기 어려워하는 것에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었다. 미안해하지 말라는 대답에 프리스크는 웃어보였다. 문을 열지 못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
내가, 그 문을 열지 못했어요. 다들 그걸 기다리고 있을 텐데….”
“…Heh, 안심하고 잊어버려. Kid.”
샌즈는 고개를 저어준다. 프리스크는 샌즈의 그 말에 안도하며 가벼운 숨을 토해냈다. 그래도 될까. 온몸이 차가웠으나 껴안은 온기에 나름 따뜻하다고 느끼며 그에게, 처음에 다시 만났던 것 처럼 인사를 건네었다.
익숙하지 않은 풍경을 바라보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여기서 뭐해, 꼬맹아.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 것에 프리스크는 고개를 뒤로 돌자 비딱하게 서 있 는 샌즈가 웃음을 터트렸다. 꽃이 필 줄은 몰랐는데. 벚꽃은 봄의 절정과도 같았다. 찬란하게도 만개하는 벚꽃들을 보고 있던 샌즈는 그 옆에 있던 벤치에 앉으며 옆자리를 손뼈로 툭툭 쳐댔다. 프리스크는 아무런 말없이 샌즈의 말을 따라 옆자리에 앉아보였다. 낯설기만 한 가벼운 바람 소리와 벚꽃 잎이 사방에 흩날렸다. 프리스크는 그와 함께 벚꽃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따라 웃어 보였다.
너는 이른 죽음을 맞이했고 숨이 다하기 전까지 내게 여전히 미안하다고 한다. 왜일까. 미안한 것이 없는데도. 너는 안도한 듯 숨을 내뱉었다. 이제 겨우 네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너는 웃으며 안녕이라고 말한다. 마저 못했던 말은 목으로 넘겼다.
내가 널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Kid. 네가 숨이 멎은 것에 그제야 빗물을 쏟아낸다. 나는 아직 너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아직 여린 네가 감당해야 할 것은 너무나도 컸다. 나조차도 버틸 수 없는 것을 너는 전부 인내했다. 네가 그리도 상냥하게 웃으며 떠나버렸다. 샌즈는 그대로 잠들어버린 프리스크를 끌어안았다. 마지막의 온기조차도 느끼지 못했고 뼈가 시릴 만큼 차가웠다. 나도 널 마지막에 볼 수 있을까. 그런다면 내 등 뒤로 만개한 벚꽃을 함께 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열려있는 문틈 사이로 벚꽃 잎이 떨어졌다.
“…안녕, 프리스크.”
From. 셀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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