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야."
* 첫 바다가 너랑 오는 거라니.
"그래서 싫어?"
* 나쁘진 않아.
프리스크는 여유롭게 차를 부둣가 쪽에 대놓고서 느릿한 몸짓으로 일어났다. 지상에 나온 지 몇 년이나 지났을까? 리셋을 하지 않은 이상, 그는 어느덧 청년이 되어서 몸이 다부지게 변했다. 그만큼 자기 관리도 하고 선천적인건지 모르겠지만, 키도 훌쩍 커버렸다. 어린 모습에서 성숙하게 자란 자신의 모습이 낯설기도 할 법한데, 이미 익숙해졌다. 이게 한두 번도 아니고.
샌즈는 어렴풋이 짐작했으리라, 자신이 처음 바다를 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 전에 왔던 적은 없었다. 하지만 아마 전 시간대에 왔었겠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대체 무슨 이유로 리셋을 하고 다시 온걸까? 하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부서지는 파도의 소리를 들으면서 후드의 주머니를 뒤적인다. 하얀 바탕에 노란색 띠로 포인트를 준 담뱃갑이 나왔고, 그것만큼이나 새하얗고 두툼한 담배를 입에 물었다.
* 라이터 좀.
"아, 응."
담배를 물고서 까닥이는 해골을 보고 자신도 담배 한 개비를 입으로 지그시 물었다. 그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인 후 그와 얼굴을 맞대고 담배의 끝자락이 옅게 타들어 가는걸 본다. 불이 완전히 붙자, 둘은 떨어져서 멍하니 바다를 바라봤다. 내리쬐는 햇빛이 너무 강렬해서 아주 밝지도 않고, 늦지도 않은 시간에 와서 그런지 제법 시원했다. 아무래도 바닷바람이라 그런지 더 나은 걸지도 모르겠다. 짙은 하얀색 연기가 공중에 남아있다가 금방 사라지고, 노을이 물드는 바다는 훨씬 더 포근하게 다가왔다.
달콤한 휴식을 맛보며 거의 다 타들어 가는 담배를 바닥에 툭 던지고 발로 지져서 꺼버린 후에 샌즈의 손을 잡는다. 키가 작은 그이기에, 다리와 허리를 숙이게 되는 구부정한 자세가 되자 샌즈는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들고 손을 놓는다. 그리고서는 양팔을 뻗어 고개를 돌리고서 헛기침을 한다. 프리스크는 처음에 무슨 뜻인지 못 알아 챘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이더니, 웃으며 가볍게 몸을 안아들고 얼굴을 맞댄다.
모래사장을 밟기 위해서 옆의 계단으로 향하다가 다시 발걸음을 돌려 차의 트렁크를 톡톡 건드린다. 샌즈는 옆으로 내려와서는 양손을 주머니에 꼽고 가만히 그의 행동을 지켜본다. 얇은 남방이 바람에 살짝씩 흔들리면서 보이는 안쪽 나시티가 하얗게 빛을 내고 있었다.
"돗자리랑 맥주를 좀 사 왔어. 간단히 먹을 과일이랑 같이 아이스박스에 넣어뒀거든. 여기서 사기엔 너무 비싸기도 하고."
* 철저하네.
"모처럼 오는 바다인데 더 즐겨야지."
* ...그러냐.
아무런 감정 없이 말을 툭 내뱉고는 입가를 가느다란 뼈 가락으로 슬슬 쓸어낸다. 자신을 위해서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이 보이니 고맙기도 하고, 더 복잡한 감정이 들어가는 이유는 대체 뭘까. 그와 같이 지내고 마치 연극처럼 연인 연기를 하면서 지낸지도 꽤 오래되었는데, 가끔 튀어나오는 이 무심함을 막을 방법이 없다. 진심으로 널 받아들이고 사랑한다면 좋겠지만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도 정리되어있지 않다.
그걸 모를 리가 없는 프리스크는, 아주 옅은 눈매를 띄워 그를 바라본다. 황긍빛 눈동자가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은 채 담배를 피우는 해골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이미 익숙해졌잖아? 계속 반복할 때마다 샌즈의 반응은 항상 한결같았고 말이야. 저런 말에 상처를 받을 이유가 하나도 없지. 다만, 조금은 쓰라리긴 하네. 괜히 마른기침하며, 쓸데없는 생각에 빠진 그를 꺼내온다. 이 정도 신호면 알아채니까, 재촉하지 말자.
* 미안.
"뭐가 미안해?"
* 네가 옆에 있는데 다른 생각을 한 거? heh.
그의 입에서 미안하다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역시 시간을 계속 반복할 때마다 미묘한 차이가 있긴 하구나. 이런 반응을 보는 것도 나쁘진 않아. 어깨를 으쓱이고서, 가볍고 작은 해골을 안아 들었다. 익숙치 않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다가도 담배를 저 멀리 튕겨내고 그의 옷깃을 잡는다. 아주 작은 애정표현인가? 아니면 제 체력에 맞게 떨어지면 즉사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우습다, 엄청 우스운 발상이었다. 저 스스로가 헛웃음이 날 정도로.
작은 아이스박스를 옆에 메고, 돗자리를 그의 손에 쥐여준다. 예술처럼 깔린 모래사장을 밟기 위해서 옆 계단을 내려간다. 사박사박 소리가 나며 발이 조금씩 빠지지만, 깊게 빠지는 것도 아니고 운동화를 신어서 모래가 가끔 들어오긴 하지만 불편하진 않았다. 어차피 오래 있을 것도 아니고. 돗자리를 조심스럽게 펴두고 잔잔한 파도 소리를 들으며 아이스박스를 옆에다가 둔다. 그 안에서 맥주와 먹거리를 꺼내두고 둘 사이에 둔다.
시원한 캔을 집어서 똑소리가 나게 가벼이 딴 후, 제 입가에 가져가 마신다. 입가를 부드럽게 올리며 제 몸 샅샅이 들어오는 맥주를 느껴본다. 해골이 이런걸 먹는 게 참 신기하기도 하지. 세상은 원래 이런 일 저런 일 있는 거 아니였나? 흠, 하는 소리를 내며 과일도 두어 개 집어먹는다. 지금 다린 괴물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라는 궁금증도,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도 저 바다에 밀려 들어가서는 파도와 함께 부서진다.